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상관 살해 (문단 편집) === 대한민국에서 === 박 중령은 고재봉을 절도범으로 신고해서 [[국군교도소|육군교도소]]에 보내 징역 7개월을 살게 했다. 고재봉은 박 중령에게 복수하겠다며 이를 갈다가, 교도소 출소 후 자신이 근무하던 관사로 돌아와 일가족 5명을 도끼로 살해했다. 그러나 정작 박 중령의 가족은 이미 다른 지역 전출 간 상태였고, 고재봉이 실제로 죽인 건 새로 들어온 이득주 중령의 가족이었다. 고재봉은 사형 선고를 받고 이듬해인 1964년 인천의 한 골짜기에서 [[총살]]당했다. 당시 한국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던 사건으로, [[박찬주 육군 대장 부부 갑질 사건]] 당시에 일부 언론들이 이 사건을 다시 다루기도 했다.[[http://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7650|#]] 간부 간의 프래깅은 위 사례보다 앞서 일어난 [[제28보병사단 사단장 살인사건]](1959년)이 있다. 이 사건은 무려 대대장이 사단장을 살해한 사건으로, 당시 [[6.25 전쟁]]이 휴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군대의 환경이 너무 열악한 데다 당시 군단장이었던 [[백인엽]]이 심각한 [[똥별]]이라[* 이 인간은 그야말로 전적이 안 좋은 방향으로 화려하다. 군생활은 [[5.16 군사정변]] 이후 군납비리로 점철되었다는 것이 드러나서 10개월간 감옥에 있다 예편당했고, 그 이후에는 [[선인학원]] 비리로도 유명한 사람이다.] 휘하 지휘관들을 가혹하게 대한 나머지 심각하게 갈등이 쌓인 상태였고, 그 외에 여러 상황이 너무 안 좋게 맞물려 들어가서 벌어진 일이었다. 정작 가해자나 피해자는 모범적인 군인이었다. 자세한 것은 링크된 문서를 참고하자. 국방부는 군인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있다는 비판이 많은 만큼, 북한과의 전쟁 시에는 국군이 이겨도 서로 똥군기로 갈군 상관에 대한 보복으로 이쪽도 수뇌부가 멀쩡하진 못할 수 있다. 장교들의 보신주의나 무능함을 목격한 병들이 전시에 그 지휘를 순순히 따를 거라고 보기 어렵다. 당장 장교와 많이 접하는 [[행정병]]이 십중팔구 일반 전투병보다 장교를 더 불신하는 경향이 큰 것에는 이런 이유가 많다. 급양관이 남은 부식을 빼돌리거나 초급간부가 거짓으로 초과근무처리를 하고, 원래 장교나 부사관이 처리해야 할 작계 관련 업무 등 중요 업무나 기밀을 병에게 짬 때리는 등 그 각종 비리 내막을 일선의 병사들도 아주 잘 안다. 그리고 그런 짓을 저지르는 인간이 전쟁 시라고 잘할 리는 없다. 전쟁터로 가는데 무기 하나, 장비 하나마저 [[높으신 분]]들이 빼돌리고 병사들은 사지로 내몰렸을 때, 그리고 어눌하고 어정쩡한 초급간부가 내 분대장이나 지휘관일 때 분노가 누구를 향할까? 다만 앞으로 발생할 프래깅은 주로 간부와 간부 사이에서 발생될 것으로 추정되며 지휘관 전사 시 다음 지휘권을 받는 직책인 부중대장, 부대대장등이 불합리한 명령과 부하를 사지로 몰아세우는 비합당한 전술이나 자살특공 등 비윤리적인 명령 같은 상황에서 평생 짊어갈 책임을 각오하고 행하지 한낮 병사가 개인적인 감정이나 명령에 대한 단순한 불만으로 장교를 살해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휘관 사살한다고 상황이 180도 달라지는 건 아니며 쏘고 난 후 오히려 자신이 즉결처분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본인이 제일 잘 알 것이다. 따라서 프래깅 자체가 괴담처럼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몇몇은 주장한다. 사실 걸리면 큰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극도로 비밀스럽게 이루어지는지라 위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카더라'에 가까움을 알 수 있는데, 프래깅 자체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다 보니, 이로 인해 과장된 면도 크다는 것이다. 의문의 사상자들을 프래깅으로 인해 죽은 것이 아닐까 추론하는 수준인데, 위에서 말했다시피 전쟁공포증으로 인해 패닉상태로 무차별 난사나 혹은 오인사격 등으로 죽었을 가능성도 있다. 애초에 총알이 빗발치는 급박한 전쟁상황에서는 지뢰라든지 안전사고 등 별의별 사유로 죽을 가능성도 있다. 당장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만 봐도 아군의 오인사격으로 인해 죽은 경우도 많았고, 심지어 예비군이 동료의 오발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잠깐의 소규모 작전에도 그런 피해가 발생했는데, 대규모 전면전, 그것도 기약 없이 길어져 사병들의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에서는 별의별 의문의 사망자들이 속출할 수도 있고, 이런 사망들을 일일이 다 조사해서 밝혀낸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망원인 전수조사의 어려움으로 인해 프래깅을 하면 프래깅이 아닌 것처럼 증거인멸이 가능하다. 게다가 상부 입장에선 일단 적군이 쳐들어오면 부하 대부분의 미움을 받는 장교 하나쯤 사라진다고 해서 전투에 급격한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없다.[* 당장 프레깅이 심했다는 베트남전만 해도 프래깅 때문에 전투에 졌다는 말은 거의 없다.] 그러나 증거를 찾는다고 병사들을 들쑤시면 상부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함께 전투상황에서 병사들이 투항해버리거나 밀려버릴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전장에서 평판이 극악한 하급이나 중급 장교 하나쯤 사라진다고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며 죽더라도 전장의 여러 가지 사유로 사망 이유가 대체되어 처리가 가능하기에 제대로 밝혀진 적이 없을 뿐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평화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낙관론자들은 만약 정말 전쟁이 발발한다고 하더라도 적군이 우리나라에 쳐들어와 깽판 치는 급박한 상황에서 한가하게 지휘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죽인다는 가정부터가 비현실적이라고 본다. 전시가 아닌 평상시 별로 맘에 안 들던 상관이나 동료병사들을 전쟁 때 죽이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외부와의 대립은 내부의 결속을 강화시킨다. 실제로는 막상 전쟁 터지면 급속히 결속하며 뭉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실제로 일단 뭉쳐야 내가 살 확률이 더 커지니까 말이다. 실제로 욱해서 지휘관이나 동료 병사를 살해하는 경우도 분명 나올 테지만 이런 경우는 다른 군인들에 의해 진압될 확률이 더 높은 사고다. 그러나 [[베트남전]]과 [[이라크전]]의 프래깅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실질적으로 발생하고 숨겨지는 프래깅의 대부분은 한두 명이 욱하고 저지르는 게 아니라 동료병사들의 암묵적 동의를 얻은 뒤 처리하는 것이다. 병사들의 생존에 대해서 적군의 위험도보다 상관의 위험도가 더 높아서 없어지는 게 자신의 생존에 유리하다고 판단되었을 때 벌어진다는 것이다. 낙관론자 혹은 국방부 요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평시와 전시의 상황이 다르다. 평시에는 사람을 죽일 일이 없다 하더라도 전시에는 '이미 적군과의 전투를 치르는 중이며, 이미 나를 죽이려 하는 적군을 몇몇 죽였는데 나를 사지에 몰아넣는 상관 하나, 선임병 하나쯤 더 죽이는 게 뭐 대수냐'는 논리가 작동 가능하다. 평시에는 병은 2년만 버티면 전역이고 장교들도 1~2년 단위로 보직이 바뀌니 더러워도 참는 게 가능하지만, 전시에는 당장 내가 죽고 나면 참고 말고 할 게 없다. 게다가 병사들에게 지탄받는 상관은 이미 내부 결속을 파괴시키는 존재로 병사들에게 인식되므로 차라리 없애는 게 내부 결속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외양적으로 악독할지라도 실제로는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것이 어필되어 프래깅 자체가 실행이 안 되니 상관없다. 게다가 대한민국 국군은 갈등이 가장 심한 관계는 다름 아닌 병사들 사이다. 소위 말하는 선임병과 후임병은 원칙상으로는 동등한 위치인데도 불법적으로 통제를 가하고 받는 상황이다.[* 선임병이 본인에 대한 욕을 메모장에 적은 후임병을 '상관모독죄'를 들먹이며 괴롭힌 경우도 있다. 그런데, 법적으로 선임병은 후임병의 상관이 아니다.] 거기에 간부는 적어도 합법적으로 보이는 명령으로 병들의 통제권을 확보하지만 병들은 똥군기와 가혹행위라는 명백한 불법행위로 통제를 하는 상황이다. 프레깅이 심각했던 베트남전 미군과 한국군을 비교해 보면 위에서 언급한 대로 간부와의 갈등과 불신은 미군보다 심각하게 나쁜데 거기에 미군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병사끼리의 갈등이 심각하다. 거기에 간부보다 병사가 십 수배는 더 많으니 상관 살해 가능성도 수배에서 수십 배는 높은 상황이다. 물론 간부들도 폭행이나 폭언을 하는 인간들이 많아서 베트남전의 미군보다 갈등은 심각하다. 거기에 한국군은 병사들의 스트레스를 줄여줄 수 있는 병사 복지가 선진국의 군대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한 실정이라 상관 살해의 원인이 더 넘쳐나는 상황이다. 60~70년대까지 멀리 갈 것도 없이 80~90년대에도 군경에 의한 총기 난사 사건이 언론을 타는 것만 1년에 1건 이상 발생하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위의 낙관론은 더욱 힘을 잃는다. 거기에다 상관이 병을 직접적으로 제거하는 즉결처분에 대해서도 일단 현재 한국에서는 즉결처분을 전시나 평시나 모두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상하게 즉결처분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실제로는 '''어느 정도 제정신이 잡힌 군대치고 즉결처분을 인정하는 군대는 없다.''' 한국이든 어디든 말이다. 당장 한국군도 [[6.25 전쟁]] 당시 워낙 파죽지세로 밀리는 지라 허용한 적이 있었는데 [[백인엽|합법적으로 악용하는 사례]][* 대표사례로 다른 부대 통신병이 자기 부대 쫓아가다 자기 차 앞질렀다고 쏘거나 차 시동 꺼트린 운전병을 쏘거나 훈시하는데 자세불량으로 그 자리에서 세명을 쐈다.]가 생겨 1년도 안되어 폐지했을 정도다. 다만, 즉결처분권은 폐지된 지 한 달도 안 되어 약간의 규제가 더해진 체 한국전쟁 휴전까지 부활하긴 했다. 물론 상관 살해도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실제로 일어나듯이, 간부들에 의한 병 살해도 충분히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며 이로 인해 프래깅이 발생할 여지 역시 여전히 남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